2012.09.05
글로벌 기업 다이얼의 전 최고경영자(CEO) 허브 바움은 취임 직후 전사 영업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저서에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처음으로 여러 직원을 만날 기회라 기대에 부풀었던 바움. 하지만 그는 영업사원들의 잘 준비된 발표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대부분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여러 회사에서 일해 본 그에게도 이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당혹감을 넘어 갈수록 화가 났다.
드디어 그에게 발표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명확하게 말했다. “내년에는 이 회의장에 더 많은 소수계 출신 직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 그룹에 대한 나의 첫째 목표입니다. 다양성이 없다면 성공적인 영업 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중상층 백인만이 고객이 아니라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이 섞여 있어야 직원들의 재능과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한 때문이었다. 훗날 그는 이런 다짐을 철저히 실행에 옮겼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변화는 곧 개인 가치의 변화
산업화 시대에는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효율성이 중요했다. 개인이 차이를 만들어내기에는 자금•환경•정보력•인적자원 등에서 한계가 있었다. 또 지역을 벗어나 사업을 전개하는 것도 경제적 비용과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러나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지식 기반 사회와 글로벌화라는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가 있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정보기기 가격 하락으로 정보화에 들어가는 돈이 크게 줄었다. 그 종류 역시 PC 위주에서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정보를 찾고 소통하는 방식 또한 인터넷의 대중화에 힘입어 종류가 다양해지고 비용은 거의 들지 않게 됐다. 이에 따라 기업 역량에 있어 부문별 중요도도 바뀌었다. 정보와 지식이 더욱 중요해졌으며, 정보력의 소유자는 조직에서 개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제 기업 가치 창출의 핵심은 개인 역량이 됐다. 각 개인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개진하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 요소다. 따라서 상명하달 식으로 움직이는 회사는 창조와 융합의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개인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만 혁신의 에너지 또한 배가된다.
기업의 혁신이란 무엇인가
온라인 생명보험이라는 혁신적 상품으로 일본에서 성공적 사업을 펼치고 있는 데구치 사장은 “일본 기업이 여성과 젊은 임원을 대거 채용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주가가 10~20% 오를 것”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했다. 실제로 그는 스타벅스 마케터 출신을 생보 업계 최초의 여성 상근 임원으로 영입했다. 그 여성 임원은 “고객을 위해 좋은 보험 상품을 만드는 것과 고객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은 일맥상통한다”며 기꺼이 새로운 도전을 수용했다. 데구치 사장은 “리더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무엇인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면 동반자는 모여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신하겠다는 의지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 그리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성 임원이 늘어나고 젊은 세대가 많아지는 것만으로 기업이 변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젊으니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오히려 경험이 풍부한 이들에게서 뜻밖의 신선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젊음의 열정에 전문가의 감과 통찰력이 어우러져야 하는 이유다.
또한 조직이 크다고 해서 혁신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애플 출신의 한 개발자는 “애플은 거대한 스타트 업(막 창업한 벤처기업)처럼 운영된다”고 했다. 문제는 세대•성별•성장 환경의 차이가 다양성 추구로 이어지고, 구성원들이 이를 진정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다. 각자의 경험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수평적 소통 문화, 그리고 이를 신속하게 실행하는 리더십이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많은 기업에 경제적 불안감이 퍼져 있는 가운데 새해를 맞이했다. 세대 간 격차, 다문화, 치열한 경쟁 환경 같은 불확실한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불확실성의 근본적 이유는 지금이 과거와 다른 환경, 즉 글로벌 정보화 사회로 가는 역사적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헤쳐가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우리 인식도 바꿔야 한다. 그 중요한 방향타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갖추느냐에 따라 지금의 불확실성은 외려 새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힘차게 변신하는 새해를 기대한다.<Ahn>
* 이 칼럼은 2012.01.02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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