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6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용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V3 백신이다. V3는 1988년 6월, 당시 의대생이던 안철수 박사가 개발했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소프트웨어는 한컴(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이다. 한/글은 1989년 개발됐으니 V3 보다 1년 후에 탄생했다.
국내 소프트웨어의 잔혹한(?)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제품이 개발됐고 또 사라져 갔다. 그러나 V3와 한/글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V3 백신은 사이버 국력을 상징하는 정보보안 소프트웨어이고, 한/글은 자국의 언어를 대표하는 워드 프로세서라는 점이다. 국가적으로 필수적인 소프트웨어를 자국의 순수 기술로 개발해 국민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자국 기술이나 제품이 없어 외산에 의존하고 있는 여타 국가들과 비교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 소프트웨어들이 주름잡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적어도 자국 소프트웨어를 가진 나라이다. 그 점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소프트웨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나 정신이 깃든 산물이지 않는가? 가령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를 장악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시장 선점 효과가 크고 선발 업체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경향이 크다. 역으로 말하면 후발업체는 그 만큼 어렵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을 갖고 있는 동시에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미국이 더욱 유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외시장 개척과 바다거북의 공통점
척박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개발된 제품이 국내에서 살아남아 해외로 나가는 것 조차 힘들다. 마치 바다거북이 알을깨고 탄생했다해도 백사장에서 해안선까지 살아남아야 하고, 바다에 들어가서도 수많은 천적으로부터 살아남아야하는 모양새와 같다.
잠깐 하드웨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하드웨어 제조업이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을 이끌어 왔다. 삼성, LG, 현대 등 제조업 대기업이 그 선봉이었다. 해방 이후 전쟁의 상흔을 딛고 우리나라는 근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들이 역경을 딛고 이룬 결과였다. 전자, 자동차, 선박 등 하드웨어 제조 분야에서 그렇게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와함께 정부 단위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7-80년대 정부 주도 하에 제조업을 수출 전략 품목으로 지정해 관세, 환율 정책 등 다분야에 걸쳐 제조 대기업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다시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해보자. 소프트웨어는 이런 근면성실한 노동력과 기술력에 더해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더해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위주의 산업에 익숙해지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는 돈을 쓰기 아까워한다. 예를 들어, PC를 살 때 안에 설치되는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따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반응이 어떠한가? 이 하나의 질문이 현재까지의 소프트웨어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 말에 개발된 V3와 아래 한글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하지 못했다. 오히려 싹이 말라 버렸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많지만 대부분 영세하다. 대기업 하청 업체로 겨우 연명하거나 어느 정도 성장을 하다가 경영악화로 몰락한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이 대다수다. 그나마 살아서 기술 개발하고 신제품 출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면 다행이다. 국내에서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정상적인 가치를 부여해 제 값 주고 구매하는 문화도 자리잡지 못했다.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는 늘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을이다.
이런 상황은 바다거북이 힘겹게 부화에 성공해 해안선까지 도착도 못한 채 천적들의 먹이가 되어버린 모양과 비슷하다.
안철수연구소의 초기 비화: 알을 깨고 나온 바다거북
안철수연구소는 처음부터 지금의 안철수연구소였을까? 사실은 초기 안철수연구소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8년 V3 탄생 이후 7년간은 무료로 안철수 박사가 혼자 보급했다. 기업을 만든 것은 1995년이다. 당시 무료로 일반에 V3를 계속 보급할 수 있는 공익연구소로 만드려고 했지만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이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안철수 박사는 할 수 없이 안철수연구소라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된 것이다. 안정된 알을 깨뜨리고 바다를 향해 나가는 새끼 바다거북이 된 셈이다. 의사는 많지만 당시 보안전문가는 혼자 뿐이었으므로.
직원 월급 줄 돈도 없는 기업의 시작이었다. 외국 거대 보안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삼키려 했다. 마치 백사장에서 해안까지 힘들게 기어가는 새끼 바다거북을 삼키려는 독수리처럼. 한 글로벌 기업은 1천만불에 V3를 팔라고도 했다. V3를 팔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안철수 박사는 단번에 거절했다. 만약 V3를 팔면 국민들이나 기업,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부 기관들은 처음에는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용하다가도 결국에는 값비싼 가격에 백신을 사야할 뿐만아니라 사이버 안보의 관점에서도 불안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보안은 국적도 중요하다. 위 두가지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 사명감이 중요한 것이 보안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아시아 국가 중에서 자국 백신은 가진 나라는 한국을 비롯 중국, 인도 등 몇개국에 불과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자국 백신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미국 업체에 팔아버려 순수 기술력을 키우지 못했다. 미국 업체들이 안방처럼 자리잡게 된 이유다. 만약 V3도 미국에 팔았다면 지금 어떠했을까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일반에 무료 배포하다보니 V3는 기업화/사업화가 늦었다는 점이다. 1988년부터 기업화가 됐다면 해외 진출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7년이란 세월을 무료로 보급하다보니 1995년 회사가 설립돼 미국 업체들에 비해 크게 늦었다. 순수 공익적으로 V3를 무료 보급하다가 기업화되는 과정에서 상용화가 늦었고, 이런 환경에서는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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