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4
영화 '아이로봇'에는 폐기됐던 로봇들이 어떤 신호에 의해 작동이 되면서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물 덩어리로 보였던 로봇 껍데기가 살아나면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장면은 섬뜩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하드웨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프트웨어가 이런 존재가 아닐까?
'소프트웨어는 기능이지 산업이 아니다'라는 선마이크로시스템 스콧 맥닐리 회장의 발언에 '그건 어리석은 얘기다. 소프트웨어는 미래다'라고 마이크로소프트 스티브 발머 회장이 반박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두 회사가 크게 대립하다 보니 도에 넘치기는 했으나, 자바(Java)와 컴퓨터(PC) 운영체제를 이끈 양대 지도자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사실만큼은 인식을 같이 했다.
최근 많이 듣는 말이 '융합'이다.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적절한 키워드이다. 때로는 이런 메시지를 통해 시대적 공감대를 가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융합의 핵심에 대해서도 생각이 같은 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는 하드웨어 기반 국가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 우리 나라 대표 산업은 대부분 하드웨어 제품이다. 철강, 화학, 건설과 같은 인프라도 산업 시대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대형 주물을 쏟아 붓고 거대한 선박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 우리에게는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벤치마킹 대상도 비교적 명확했다. 당시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표준 플랫폼을 이끌고 있었고, 우리는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제품을 만들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산업 역군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세계 1위 제품들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것도 빠른 인터넷 인프라를 가진다는 목표로 집중하여 매진한 결과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IT는 우리 생활 속에 접목되었고,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스며들었다. 이제 하드웨어에 생명을 불어넣고 꽃을 피워가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역할이다. 이미 우리가 세계적으로 주도하는 하드웨어 제품도 소프트웨어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차별화된 가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적 통찰력이 기본이 돼야 한다.
애플사의 아이폰은 기존의 질서를 깨는 혁신적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이폰 단말기만 분석하는 하드웨어 마인드로는 콘텐츠와 통신 서비스, 웹을 관통하는 이 제품의 철학을 놓치기 쉽다. 최근 화두인 닌텐도 게임기도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 콘텐츠가 전체 부가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프트웨어가 기능이든 산업이든 논의에 상관없이, 융합의 메시지를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은 소프트웨어 마인드임이 분명하다.
글 :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대표이사
# 위 칼럼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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