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2
필자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학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프로그래밍 기초가 부실하기도 했거니와 우리 나라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컴퓨터(PC) 환경은 아주 열악했다.
일단 강사가 대학 교수가 아닌 대학의 시스템 관리를 부업으로 하는 대학원생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수업 시간, 강사가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리둥절하던 차에 알게 된 것은 이미 첫 숙제가 이메일로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우리 나라 수업과 또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강사와 적극적으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 과목은 졸업을 위해 필수로 이수해야 했는데, 시험 대신에 7개의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했다. 학기말이 다가올수록 프로젝트는 어려워졌고, 마지막 과제는 여러 명이 팀을 만들어 시연을 직접 해야 함은 물론 방대한 상세 설계서도 제출해야 했다. 이 과목은 워낙 유명해서 매 학기말만 되면 과제를 끝내기 위해 전산실이 북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대화와 토론이 거의 없던 우리 나라의 강의와 비교해서 큰 충격이었다.
IT 종사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은 군인에게 사격과도 같다. 그만큼 IT의 기초이기 때문에 필수 과목인 것이고, 실전에 가까운 무자비한 ‘훈련’이 바탕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회사에 가도 바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취업이 힘들어진 경제 상황에서도 IT 기업은 원하는 인력을 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IT 인력의 수요ㆍ공급 괴리는 실무적 기초에서 시작한다. 미국 대학의 꽃은 학부라고 한다. 학생은 스스로 장래를 결정하기 위해 소양을 넓히고, 캠퍼스 문화와 인프라를 통해 사회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필요하다면 근처 전문대학에서 특정 과목을 이수해서 기초를 보강한다. 클러스터 형태의 입체적 교육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도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이런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그 이유는 대부분 대학원 과정에 다녔기 때문이다. 전체 산업 구조가 교육 시스템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 지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교육은 교수의 강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는 스스로 깨우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학에서의 장기적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은 잘 훈련된 인력에 더욱 목말라 한다. 따라서 저변을 구성하는 양질의 인력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주입식 강의보다 자율적 시스템과 실용적 인프라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한다.@
글 :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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