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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Lab 칼럼/CEO 칼럼

[CEO Column] 창업의 가시밭길, 그는 왜 다시 택했을까

by 보안세상 2020. 4. 24.

2012.09.11

 

남과 다른 무엇이 되어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어느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 기업의 창업자는 아니었다. 창업자는 추구했던 사업 모델이 실패해서 이미 떠난 후였다. 대주주였던 벤처캐피털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그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벤처캐피털이 그에게 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하루빨리 경영을 정상화하고 재정상태를 흑자 구조로 바꾸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달랐다. 필요한 자금을 투자할 터이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신제품이든, 기존의 기술을 향상시킨 것이든 ‘남과 다른 무엇(to-be-something)’이 되라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기업의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한 결과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해 ‘주목할 만한 틈새 기업(niche player)’으로 인정받았다. 비록 흑자 전환은 하지 못했지만,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한 대기업에 인수됐다. 대기업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그 제품은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노베이션과 차별화가 기업의 가치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잘 보여주는 스토리다.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정보 보안 산업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혁신적인 기술이 연이어 발명됐고, 투자는 활발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그 열기가 크게 줄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백 건의 인수합병(M&A)이 2005년까지 대부분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제품이 되면서 매출과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이노베이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로부터 1~2년 후 창업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오랜 친구 중에 벤처기업을 대기업에 매각해서 큰 부를 거머쥔 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업을 사들인 대기업에서 고위급 임원으로 재직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기조연설을 할 정도로 유명인사도 되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명예와 직장을 내던지고 조그마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없고, 평생 먹고살 만한 재력도 확보한 그가 다시 창업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한 게 필자뿐이었겠는가. 그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카드 빚으로 컴퓨터를 장만해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재정은 쪼들려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기쁨에 충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회의와 연설·인터뷰로 점철된 업무는 지루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수 후 대기업으로 편입됐던 직원들 대부분이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자 창업을 하거나 작은 회사로 옮겼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정보기술(IT) 산업 속에서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역할 분담을 실감할 수 있다. 수많은 창업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그중 성공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에 인수된다. 대기업은 외부의 이노베이션(벤처기업)을 수혈해서 자신들의 강점인 체계적인 사업 인프라 속에 집어넣는다. 대기업은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러한 신선한 피를 받아들임으로써 관료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 혁신을 향한 무한도전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우리나라의 5000만 국민 중 대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200만 명밖에 안 된다. 2000만 명 이상의 일자리는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80년부터 2000년까지 대부분의 고용 증가는 설립한 지 채 5년이 안 된 기업들의 몫이었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우리는 기업의 가치가 혁신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혁신, 즉 이노베이션은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의 희열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도전정신을 가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들어도 기업가의 길을 걷는다. 기업가 정신은 전환기에 놓인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이 아닐까.


* 이 칼럼은 2011.10.11 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