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5
얼마 전 의미 있는 법안이 통과되어 IT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우여곡절 끝에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계기로 기존의 불합리한 SI 사업 관행이 개선, 선진화되리라 기대한다. 비록 IT 서비스 분야의 법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SW 생태계의 재탄생 시점
돌이켜보면 불과 2년 전, 우리는 스마트폰이 몰고 온 메가톤급 충격으로 휘청거린 경험이 있다. 그 원인은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생태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전문 업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들 전문 업체들이 대기업과 수직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가 원인이었다. 그 이후 정부 차원에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개선하고 중소 전문기업의 성장 토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으로 결실이 맺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서 제도의 취지대로 결과가 나올 리 없다. SI 프로젝트 수행의 애로사항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서비스 범위를 정량적으로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프트웨어 기업은 하청업체처럼 시간에 쫓기기 일쑤다. 또한 발주자의 잦은 스펙 변경은 제품화를 역행한다. 이런 관행을 개선하고 글로벌 표준 관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바라보지 않는 한, 표면적인 제한 조치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시대 변화의 핵심은, 폐쇄적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받아 보던 과거의 산업 형태가 개방형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과 소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스마트폰 산업을 이끄는 기업으로 통신 사업자가 아닌 애플과 구글이 거명된다. 지금은 사업 모델, 시장 지배력, 가치 사슬의 전반적 구조가 재편되는 생태계의 재탄생 시점이다.
새로운 SW 생태계를 형성하는 세가지 요소
새로운 생태계의 철학은 상생, 수평 구조, 파트너십이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본질적 개념과 사상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생태계 형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첫째,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수익률이 우수한 분야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프트웨어가 잘 관리되는 것을 전제로 성립되는 명제다. 소프트웨어를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사용자는 끊임없는 커스터마이즈(customize)를 요구하고, 프로젝트는 비용과 시간에 쫓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수많은 버전의 제품을 배포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플랫폼과 패키지를 구성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이폰이 하드웨어 스펙, 운영체계, 콘텐츠 플랫폼을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이유를 눈여겨봐야 한다.
둘째, 소프트웨어의 라이프 사이클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기획, 설계, 개발, QA(품질보증), 보안성 검증, 통합 테스트, 업그레이드의 유기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각각의 프로세스를 세세하게 검증하는 전문성이 소프트웨어의 질을 높이고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
셋째, 고객과 소통하는 서비스 인프라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는 처음 배포된 시점부터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감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관성과 신뢰가 결여되면 사용자는 피로를 느낀다. 단 한 명의 고객이라도 책임지고 서비스한다는 책임감을 갖추어야 한다. 유지보수율이 선진국 대비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은, 아직도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같은 소모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제대로 서비스 단가를 받을 수 없고, 그나마 서비스의 범위가 애매모호하게 정해져 있을 경우, 제대로 된 서비스 품질이 유지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에 덧붙여 리딩 기업과 후발 기업 간 수평적 협력을 강조하고 싶다. 안랩은 지난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최초로 개발자 콘퍼런스인 ‘안랩 코어(AhnLab CORE)’를 개최했다. 소프트웨어 업계 리더로서 그동안 축적한 개발 노하우와 보안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성장하자는 차원이다. 소프트웨어를 기획•개발•검증•사업화하는 노하우를 공개하고 전문가를 육성할 뿐 아니라 파트너로서 수평적 협력 관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이 바람직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작은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Ahn>
* 이 칼럼은 2012.05.20 일자 디지털데일리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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