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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Lab 칼럼/리더스 칼럼

11년 전 나를 사로잡은 안철수연구소의 기업문화

by 보안세상 2020. 4. 23.

2011.11.01

 

피면접자로서 만난 안철수연구소의 기업문화

바야흐로 채용 시즌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제일 처음 조직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자리가 면접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년 이맘 때쯤, 안철수연구소의 면접을 보기 위해 단 한 벌뿐인 양복을 차려 입고 2호선 선릉역을 걸어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 양복이라면 질색을 하는 터라 말 그대로 사람이 옷을 입은 것인지, 옷이 사람이 입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자세로 당시 안철수연구소 입구에 위치한 안내데스크에 들어섰다. 

 

<사진. 2000년 당시 삼성동 삼화빌딩에 위치했던 안철수연구소>

<사진. 삼화빌딩 전경>


삼성동에 위치했던 안철수연구소 사무실은 예상보다 찾기가 수월해 면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고, 면접 보기 전 잠시 딴짓(?)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내가 지원한 회사가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했던 터라 면접 준비는 일단 뒷전으로 하고, 잠겨있는 유리문 사이로 살짝 보이는 회사 내부를 보겠다고 한 쪽 눈을 감고 여기저기로 나머지 한쪽 눈을 돌려보았다.

 

<사진. 염색머리를 합성한 당시 안철수 CEO의 모습>

어색한 총천연색 염색머리를 짧게 세운 당시 안철수 CEO(현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사진, 당시 꽤나 유행했던 퀵보드를 타고 공간을 누비며 우편물을 돌리는 연구원의 모습, 귀에 거슬리지 않게 틀어놓은 음악선율, 파티션 위로 얼굴을 빼꼼이 내밀며 나랑 밥 먹을 사람을 외치는 연구원 등.

 

이것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접한 안철수연구소의 조직 문화였다.

 

자유보다는 자율이 더 어울리고, 혼잡보다는 조화가 더 어울리는 곳.

한 쪽 눈으로 본 기업 문화에 홀딱 반해 면접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 마음대로 앞으로 나와 함께 할 회사는 바로 이곳이라고 정해버렸다.

 

보통 입사 지원을 할 때 여러 회사를 지원하여, 이런저런 조건들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유리문 사이로 보이던 안철수연구소의 모습에 매료되어 지원했던 다른 회사는 모두 포기하고 안철수연구소 연락만을 기다렸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자율과 조화가 어울린 자연스러운 조직 문화에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그 어떤 조건도 더 필요하지 않았다. 


안철수연구소의 면접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원자들이 그렇듯 조직 역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접해보는 첫 번째 자리가 면접일 것이다. 조직은 면접을 통해 주어진 시간 내에 지원자의 능력을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지원자의 가치관이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안철수연구소의 면접은 개인의 학력보다는 능력, 능력보다는 가능성 중요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것은 조화이다. 그 가능성이 그 사람의 성품과 결합되어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조화로울 수 있느냐를 가장 중요시한다. 아무리 출중한 학력과 뛰어난 능력,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문화의 속성이 그러하듯 안철수연구소의 문화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사례로 실체에 다가가보자. 이 내용은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면접을 보다 보면, 자신의 능력(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해킹이라는 단어를 쉽게 내뱉는 지원자가 너무 많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보안을 위해서는 해킹을 해봐야 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안철수연구소의 면접관들이 이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OOO님은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도둑질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지원자는 그제서야 ‘아차!’ 하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자신의 기술을 돋보이려는 데 집중하다 보니, 이 곳이 안철수연구소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는 듯 ‘아~’라는 탄식을 하는 지원자도 다수 있다.


해킹 기법을 아는 것과 해킹을 해 본 것과는 엄연한 차이
가 있다. 경찰은 도둑들의 수법을 잘 알고 있지만, 이는 도둑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고 빨리 검거하기 위해 익히는 지식일 뿐 도둑질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면접관은 지원자가 실제로 해킹을 해 본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해킹이란 마약과도 같다. 해킹을 해 본 사람의 대부분은 손쉽게 유혹이 빠질 우려가 크며, 그 유혹에서 빠져 나오기도 힘들다.

 

보안을 위해 해킹 기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또한, 해킹 기법을 아는 것이 보안을 하기 위한 충분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킹과 보안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면접에 들어가기 앞서 면접관이기 이전에 안철수연구소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읊으며 면접을 시작한다.

지원자가 하나라도 느끼고 배우고 돌아갈 수 있도록
안철수연구소의 면접을 통해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다면
면접관으로 회사를 대표해 지원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고, 또 매료되었던 안철수연구소의 조직 문화가 지금 이 순간도 연구소 직원들을 통해, 또 앞으로 들어올 연구원들을 통해 백년을 넘어 천년, 만년 영원히 계승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 이호웅 / 안철수연구소 시큐리티대응센터(ASEC)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