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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Lab 칼럼/CEO 칼럼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CEO 칼럼] 글로벌화(Globalization)와 정보보안의 문제

by 보안세상 2020. 4. 20.

2008.12.18

 

결혼하려는 직원이 청첩장을 들고 올 때마다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게 된다. 예상은 하였지만 요즈음 거의 대부분의 선택은 해외이다. 필자가 결혼할 때에는 제주도가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돈이 있더라도 해외에 나가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90년대 초반부터 괌, 사이판이 신혼 여행지로 부상하더니, 요즈음은 몰디브, 터키, 그리스와 같이 거리도 멀고 개성이 강한 장소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여건이 나아져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여행 상품을 잘 기획하면 국내보다 큰 돈 안 들이고 갈 수 있다. 당연히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해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선택한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여행 풍경이다.

최근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가 힘들다. 필자는 실물 경제가 어렵게 되고 금융이 서로 얽히게 된 주요 원인이 글로벌화의 진통이라고 해석한다. 왜냐 하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수많은 인구들이 산업 인력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자원의 배치가 글로벌화했다. 아웃소싱(Outsourcing)이 국가를 벗어나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발전한 것이다. 경제권이 분산되면서 돈의 흐름도 이익을 좇아 글로벌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과거의 모델과 틀로서는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아 금융 전문가들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달리 한 금융 상품의 파생 상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파급 효과의 규모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 어떤 은행이나 금융사가 피해를 입게 될지 가늠하기가 힘들어졌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시작된 미국의 부실한 한 금융상품으로 인해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 있는 은행이 도산한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제부터 미국의 의회가 자동차 산업을 구제하는지 여부에 따라 우리 증권 시장이 요동치게 되었는가? 아침 뉴스의 헤드라인은 밤새 미국과 유럽의 분위기가 어떠했는가가 장식한다. 밤과 낮을 번갈아가며 뉴욕, 런던, 동경, 서울의 증권 시장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자금이 실시간으로 글로벌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부와 권력의 대이동’에서 글로벌 사회의 경제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구 반대쪽 사람들이 바로 같은 거리에 사는 사람들만큼 가까워졌다. 그러한 사람들의 존재는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첫째, 그 수가 엄청나다는 것, 둘째는 그들 모두가 허기진 상태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시대를 따라잡고 존중받으려는 갈망에 수많은 인원들이 허기져 있다”. 당연히 그는 인터넷이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엔진이라고 간주한다.

경제만 그러한가? 문화의 공간도 국가의 벽을 허물고 있다. 한류 열풍은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무엇보다 위성으로, 디지털 콘텐츠로, 인터넷으로 문화가 유통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일본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프리미어 리그에 어떤 팀과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축구 팬들이 밤을 지새우며 실시간으로 경기를 시청한다. 프로축구 K-리그의 경쟁 상대는 한국 프로 야구가 아니라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다. 음식, 스포츠, 영화,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강한 문화 상품은 세계를 누비고 있다.

산업 현장과 문화의 변화는 우리의 의식도 바꾸고 있다. 민족적 배타성에 있어서 남 못지 않았던 우리나라도 학교나 직장에서 외국인이 낯설지 않고, 국제 결혼도 급증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한다는 점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많지만, 정작 후진국이나 개발 도상국에서는 세계화를 원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의 경제권에 편입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박사는 21세기 키워드를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탈권위주의’라는 단어를 택하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적합한 표현이다. 글로벌화로 국가의 권위가 줄고 개인의 권위가 커지고 있다.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성공의 열망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더 이상 기업과 국가나 어떤 공동체도 자신들의 규범과 이데올로기를 강요할 수 없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문화 스페셜리스트 김지룡 씨의 표현처럼 지금은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고, 세금을 적게 내고,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선택한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의 현실은 우리 국가가 교육 서비스에는 실패했음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변화하는 기업의 모습

항상 변화의 선도 역할은 산업 분야가 한다. 혁명적 기술이나 사회의 변화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가장 먼저 체험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의 연속’이라는 명제는 기업의 생존과 번영의 코드이기도 하다.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토대가 마련되면서 기업은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했다.

산업 시대의 관점에서 해외 시장은 우리의 상품을 덤으로 사 주는 고객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는 기업의 모든 자원과 역량이 특정 국가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 이를테면 완성된 상품만이 국경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재화와 용역이 글로벌하게 재배치된다. 더욱이 인수와 합병, 제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국가 속의 기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늘날 삼성, LG가 우리 나라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산업 시대의 오래된 사고 방식이다. 그들이 IBM, HP 처럼 글로벌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개념이다.

한때 다국적 기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테드 레빗은 “다국적 기업은 고비용을 투입하여 각기 다른 국가를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반면, 글로벌 기업은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을 투입하여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곳에 판매하여 동질화를 이루었다”고 분석했으며, 그 이후 전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앞다투어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소프트웨어 글로벌화의 축, 인도

IT 산업에서도 글로벌화는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IT의 생산이 중국,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인도라는 두 개의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IT의 메카는 미국이다. IT는 미국에서 창조되었고 IT의 중심이 되는 수많은 기업과 인력이 미국에 모체를 두었다. 그런데, 미국의 IT 분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인력이 유학으로 미국에 정착한 인도와 중국계 기술자들이었다. 이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국의 IT 산업계에 뿌리를 내렸다. IT 기업에서 인도와 중국계 경영인을 만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IT 글로벌 기지로 발전하기 전에 이미 이런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었다.

인도가 소프트웨어 개발, 서비스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대표 국가가 된 동기는 잘 준비된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두었기에 선진국과의 연결 고리가 단절되었다. '코끼리와 용(The Elephant and Dragon)'의 저자 로빈 메리디쓰는 “간디의 경제 정책은 상징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을 뿐 비현실적이었다. 후임인 네루는 계획 경제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펼침으로써 더욱 고립된 경제 체제를 지속했다. 1991년 이후 인도는 비로소 세계와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고 1999년 이전까지의 인도의 경제적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개방과 변화를 추구하던 인도가 급부상한 계기는 Y2K 버그 이슈였다. 당시 Y2K 버그의 공포스런 시나리오는 일반인에게도 회자될 정도였다. 특히 오래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서방 세계에서는 Y2K를 해결할 수 있는 일손이 크게 부족했다. 대형 프로젝트인 Y2K 버그 수정의 최종 기한(deadline)이 정해져 있다 보니 도움이 절실해졌고, 이에 인도로 업무의 많은 부분을 옮기는 과감한 실험이 행해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인도는 오프쇼어링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에 고무된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너도나도 인도를 찾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과 양질의 인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였다.

인도의 성공 배경에는 인터넷이라는 저렴한 통신 수단과,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인력, 그리고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자리잡고 있는 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오프쇼어링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그치지 않고, 콜 센터, 회계 처리, 관리 업무 등으로 퍼져갔다. 업무의 질도 노동 집약적인 업무에서 의료, 법률, 과학과 같은 지적 수준이 요구되는 업무로 향상되어 갔다. 오늘날 인포시스(InfoSys), 위프로(WiPro)와 같은 대표적인 기업들은 10만 명이 넘는 양질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은 인도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다.

IT의 글로벌화에 따른 정보 보안의 문제

IT가 글로벌화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IT 자체가 오프쇼어링의 주 대상이라면 IT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의 문제는 어떠한가? IT 인력이 전세계에 퍼져 있고, 이들이 협업을 하고 있다. 국가별로 법도 다르고, ISP도 다르고, IT 수준도 다르다. 어떤 국가는 상대적으로 IT 산업 기반이 약해서 젊은이들이 IT의 역기능적인 비즈니스, 예를 들어 해킹을 주업으로 하는 범죄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글로벌화는 정보 보안에 또 다른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 :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