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2
사용자의 신뢰가 V3의 가장 큰 자산
(글쓴 이 : 블로터닷넷 김상범 대표블로터)
V3가 벌써 20년이 됐다니. 마치 내 일인 것마냥 감회가 새롭다. 20년 전이면 1988년,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 V3를 만난 것도 20년이 흘렀다. 지독히도 오랜 인연이다. 당시를 돌이켜보니, 하드 디스크도 없는 PC에 도스(MS-DOS)가 담긴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넣어 부팅을 하던 시절이다. 당연히 디스켓 통에 이런저런 소프트웨어들을 복사(^^)한 플로피 디스켓을 빼곡히 담아놓고 애지중지하던 기억이 새롭다.
잠시 20년 전 디스켓 통을 뒤져보자. 맨 앞줄에 도스가 담겨있다. PC를 켜기 위한 열쇠 같은 소프트웨어였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한메타자, 보석글, 로터스1-2-3, 디베이스 등 지금은 추억 속의 이름들이 보인다. 그 대열에 V3도 보인다. '씨브레인(C-Brain)' 이후 컴퓨터 바이러스가 기세등등했던 시절이고, 이 때문에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으로 V3는 필수였다.
다시 돌아와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디스켓 통 속에 소중히 담겨있던 소프트웨어 중에 여전히 내 노트북에 살아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V3다. 지독히도 질긴 생명력이다. 바이러스 잡다보니 면역력도 강해졌고 생명
력까지 질겨진 모양이다.
내 디스켓 통을 20년 동안 채우고 있는 V3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0년을 유지해온 브랜드는 드물다. 내 기억 속의 브랜드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20년 전 디스켓 통 속에 담겨있던 것들 중에 지금까지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국산 소프트웨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시장을 호령하던 외국 소프트웨어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찾기 어렵다. 내가 애용하던 로터스1-2-3, 디베이스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국내 소프트웨어 브랜드 가운데 20년을 버텨온 것이 있을까. 아무리 돌아봐도 V3 말고 찾을 수가 없다. 아, 아래아한글이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V3보다는 한 살이 어리다.
사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0년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국내 브랜드가 만들어 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런 일이다. 릭 채프먼이 쓴 <초난감 기업의 조건>에 보면 소프트웨어 업계의 부침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 있다. 소프트레터라는 잡지가 매년 발표하는 PC용 소프트웨어 부문 100개 기업 목록을 비교한 내용인데, 1984년의 '톱 10' 기업 목록을 보면 마이크로프로를 필두로 마이크로소프트, 로터스, 디지털리서치, 비지코프, 애시톤테이트, 피치트리, 마이크로포커스, 소프트웨어퍼블리싱, 브로드번드가 올라와 있다. 그리고 17년 후인 2001년 '톱 10' 목록
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단 한 기업만 빼고 모두 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살아남은 회사도 있지만, 살아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기억 속에서 멀어져 있다. 그만큼 부침이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 소프트웨어 업계라는 얘기다.
국내 상황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V3가 20년을 버텨왔다니 대단한 일이다. V3는 브랜드가 살아남은 것 이상이다. 20년 동안 한 번도 대한민국 대표 소프트웨어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돼 V3가 본격적인 상용 제품으로 판매가 시작된 이래 기업의 성장세가 멈춘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이었고 그 신뢰가 끊임없이 유지됐기 때문이지.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은 현지 토착 프로그램의 기득권이 매우 강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도 풍토병 같아서 특정 지역의 주민들이 그 병을 제일 잘 안다. 당연히 병에 대한 증상과 대처 방안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 지역 토착민들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도 그 지역의 오래된 의원을 찾아가지, 듣도 보도 못한 외국 의사를 찾아가지 않는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사용자들이 V3를 찾는 것은 당연했다. V3가 외국 대형 바이러스 백신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도 가장 많이 애용된 이유다.
과거를 발판으로 더욱 비상하기를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의 엄청난 확대로 컴퓨터 세상에 '지역'이 사라졌다. 바이러스의 풍토병적 성격이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바이러스 백신 시장도 당연히 글로벌 경쟁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V3로서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컴퓨터 사용자들은 V3를 찾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V3는 글로벌 바이러스 시대에도 변함없는 바이러스 퇴치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풍토병 전문의라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외국의 대형 기업들을 끊임없이 벤치마킹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글로벌 전문의로 거듭났다. 그동안 쌓았던 신뢰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한순간의 방심으로 후발주자에게 선두를 빼앗긴다. 후발주자들은 늘 기존 선두 제품의 약점을 파헤친다. 그리고 그 허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때 자만에 빠져 방심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후발주자에게 발목을 잡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은 '버전 3'쯤 되야 쓸 만하다"는 시장의 속설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얕잡아보던 선두 업체들이 하나 둘 뒤로 밀려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것이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다.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늘 인기를 끄는 것도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그리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왜 그럴까. 그건 현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 이 고통과 이 괴로움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허나, 다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산다면, 아쉬움 없는 극락 같은 인생이 펼쳐질까. 아닐 것이다. 새로운 아쉬움이 생길 것이고 새로운 고통이 시작될 것이다. 끊임없는 시간 여행의 포로가 되는 수밖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남자친구에게서 느닷없이 사귀자는 말을 들은 소녀가,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시간을 되돌린다. 그 말이 나오기 바로 전으로 돌아가 남자친구와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를 몇 번이고 바꿔보지만, 결국 그 친구의 입에선 '우리 사귀어 보자'는 말이 나오고 만다. <타임머신II>에서도 주인공은 죽은 약혼녀를 살려보겠다고 과거로, 과거로 가 보지만 결국 또 다른 이유로 약혼녀는 죽고 만다.
시간을 되돌리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 낫다. 어차피 되돌린다는 것 자체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니,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충실하자.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영화 얘기를 빌려 V3에 당부하고픈 말이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라면 V3에 거는 신뢰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 상황을 둘러보면, 지나온 20년 시간이 행복했을 만큼 힘들고 치열하다. V3에 지금까지 보여준 사용자들의 신뢰는 가장 큰 자산이다. 그 자산을 바탕으로 자만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준다면 V3의 미래는 흔들림이 없으리라 믿는다.
20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V3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앞으로 10년 후에 30주년 기념 컬럼도 쓸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정말 좋겠다.
위 글은 사보 '보안세상'(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sabo.ahnlab.com/200801/ahn_03_01.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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