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4
자주 가던 일본 출장길에
지난 3월 일본 출장 중에 고객과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50대 후반의 중소기업 대표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문득 한류 얘기를 꺼냈다.
“일본에서 한국 가수들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소녀시대와 카라는 우리 애들도 좋아하지만 저도 좋더군요.”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한류를 주제로 드라마·음식·노래·역사 등 다양한 한국 문화로 이어졌다.
일본에서의 한류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로 시작됐다. 소위 ‘욘사마’ 열풍이 불면서 초기 한류의 중심은 중장년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의 남편이자 기업의 임원들인 중장년 남성들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 덕택에 한국 음식과 콘텐트는 꾸준히 일본 사회를 파고들었다.
특히 최근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 세대로 확산되고 있다. 도쿄(東京) 시내 한복판의 대형 전광판에 등장하는 한국 연예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세계 곳곳의 식지 않은 한류 열풍
한류는 일본에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시대 궁중 음식을 소재로 한 ‘대장금’은 세계 87개국에서 방영됐을 정도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는 대부분 수십 개국에 수출된다. 요즘엔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다.
최근에는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소식이다.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일본 만화인 망가를 드라마로 만든 한국 드라마를 즐기다 K팝(한국 대중음악)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한다. 프랑스에 가장 먼저 자리잡은 한류는 여기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전 세계가 한국의 문화 콘텐트에 호감을 가진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윤활유가 되면 협상도 부드럽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한국 문화에 친숙하고 이를 소재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기업과 기업의 만남, 기업과 소비자의 만남은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의 교류가 아니다. 비즈니스란 그 주체들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바탕 삼아 이뤄진다. 특히 감성과 꿈이란 소프트 요소가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다. 서로 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것은 사업적 신뢰와 공감대를 일궈가는 기반인 것이다.
인터넷, 한류를 포함한 문화적 교류의 촉진 매개체
문화적 교류를 가속화하는 것은 인터넷이다. 세계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개인들이 콘텐트를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지구 반대편 라틴아메리카에서 한국 가수의 노래가 사랑받는 것도 그 덕분이다. 더욱이 스마트 기기, 소셜네트워크가 일으킨 정보기술(IT) 혁명은 기술적·국가적·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소통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일방적으로 밀어내는 매스 미디어 방식보다 훨씬 자유로운 소통 속에 다양한 문화가 받아들여지고 융합된다. 개인의 영향력 또한 증대되고 개성과 다양성이 갈수록 중요한 세상이 되고 있다.
문화는 강할수록 영향력이 크다. 그런 점에서 힘과 내공을 지닌 우리의 역사와 스토리, 창의력과 열정은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아울러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를 위해선 우리 사회에 내재한 경직되고 편협한 구조부터 바뀌어야 한다. 스펙과 인맥에 매달리는 사회 분위기, 본질적 요소와 동떨어진 교육 시스템,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는 산업 구조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에 맞지 않다.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창의력은 꽃을 피우며,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 속에 동기 부여가 이루어진다. 모쪼록 그런 환경을 통해 우리 스토리가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이 글은 5월 23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홍선 대표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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